KBO 프로야구 레전드 시리즈 – 02-류현진


 
류현진 (투수)
1987년생 – 별명 괴물(실력), 류뚱(생김새)
인천 동산고 출신으로 06년 한화이글스 2차 2순위
06년~12년 – 한화 이글스
13년~ 現 LA 다저스
 
국가대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2007년 아시아 선수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09년 WBC 2회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번 시간에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미국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한국인 선수 류현진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아직 현직이고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을 나이인지라 이번에 재기에 성공해서 앞으로도 쭉 레전드 커리어를 쌓아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나 이번 시간에서는 그가 KBO 에서 남긴 업적 중심으로 기술하되 MLB도 그의 발자취 및 현 상황에 대한 분석,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과 응원을 기술하도록 노력하겠다.
 
류현진을 알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드래프트 부근부터 살펴야 정답이다.
당시 SK 와이번스의 연고지역엔 인천 출신의 빅 3가 있었다.
그 중 두명은 인천고 출신의 투수 김성훈과 포수 이재원이었고 나머지 한명이 인천 동산고의 류현진이었다.
실제로 당시 기준으로 이재원과 류현진은 평가가 엎치락 뒤치락이었고 김성훈은 그 바로 밑의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SK 와이번스는 고민 끝에 청소년 대표의 중심 타자로서 대형 포수 유망주로 평가받던 이재원을 1차 지명 대상자로 선택하게 된다.
이것이 추후 류거이로 불리게 되는데 이재원이 포수로서의 성장이 여러 사정으로 조금 늦어지긴 하였으나 현재는 SK의 당당한 주전 포수로 자리잡은 것을 생각하면 결과론적으로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조금 더 안타까운 것은 류거나로 불린 롯데 자이언츠 (2차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권 보유)가 아니었나 싶다.
 
류현진 선수가 한화 이글스에서 대성공을 거둠으로써 생겨난 이 말 많고 탈 많았던 드래프트를 잠시 살펴보면 SK 와이번스 입장에서는 포수 왕국을 꿈꾸며 72년생 박경완, 82년생 정상호, 88년생 이재원 (생일이 빠름) 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후계 구도를 생각했던 것 같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리고 SK와이번스가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은 이면에는 어쩌면 토미존 수술을 받아서 2차 드래프트 4순위였던 SK는 내심 자기네까지 올 줄 았았을 지도 모르겠다. (욕심이 과해 보임 ㅋㅋ)
그러나 바로 전해에 단국대 출신의 두꺼운 가슴과 팔뚝을 자랑하는 한 청년의 대성공이 있었기에 토미존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확실히 줄어들어 순수 고등학교 때의 일반적인 평가에 따라 2차 드래프트는 진행되었다. (그렇다 이 친구는 현재 세인트루이스의 마무리 오승환이다)
06년 입단 고교 투수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
1위는 무조건 한기주
2위는 나승현 또는 류현진 앤드 유원상
여기서 김성훈 선수는 2차 4순위로 SK와이번스에 입단
참고로 3순위였던 LG는 대졸 김기표 (언더핸드스로)
* 한 학년 밑의 안산공고 2학년 김광현(88년생)이 한기주와 탑을 다툼
 
잠시 삼천포로 빠져보면 추후 한국 프로야구의 중추적 역할을 한 87년생들 (06입단)의 화려한 면면을 살펴보자
손용석, 나승현, 김문호, 배장호, 유원상, 류현진, 정범모, 김기표, 원종현, 최승준, 이재원, 김성현, 이명기, 한기주, 손영민, 박경태(박근홍), 민병헌, 최주환, 양의지, 차우찬, 김상수(투수), 김기태(감독 아님) 등
 
한편, SK와이번스가 류현진을 거르는 데에는 바로 다음해에 1차 지명이 확실시되는 김광현의 존재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 SK와이번스가 05년 입단시에 최정을 선택 안하고 윤석민(투수)을 06년에 류현진을 선택했다면 SK와이번스는 한국 프로야구의 빅3를 전부 보유하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벌어질 뻔 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야구에 야만 없고 최정이 국내 최고급 타자로 성장했고 이재원 또한 준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했기에 큰 아쉬움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흔히 토크쇼가 재밌게 구성되면 엄청 오랫동안 보고 웃었는데 이제 인사말만 끝난 경우가 있다.
그렇다. 류현진 선수가 실로 남긴 업적이 매우 위대하기에 각종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생성되어 이제 인사말 정도만 한 것이다.

(내용과 관련은 다소 덜하지만 인사말 하면 이 장면이 레전드~!!)
 
이러한 우여곡절 끝에 류현진은 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게 된다.
류현진이 입단했을 때 한화 이글스에는 레전드 집합소 같은 느낌의 투수들이 즐비했다. 빙그레 이글스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한용덕 (당시 코치), 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 이름만 들어도 특S급 활약을 했던 선수들이었다.

원래 속구와 커브 위주였던 류현진은 이 해 청주구장에서 있었던 현대 유니콘스 경기에서 부진한 이후 구대성 선수에게 체인지업을 전수 받아 그 해부터 쏠쏠하게 사용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선발투수로 영업에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중이다.
(참고로 슬라이더는 07년도 한용덕 코치와 작업하여 장착)
 
특별히 손가락 감각이 남다를 류현진이어서 이게 쉬워보이는 것이지 그 유명한 클레이튼 커쇼조차 몇 년째 체인지업을 연마만 하고 실전에서 거의 써먹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편, 당시 감독이었던 김인식 감독은 WBC 감독직을 수행중이었는데 류현진의 대성 가능성을 알아본 故 최동원 당시 한화 투수코치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그 해부터 써먹을 수 있는 선발투수로서 수업을 시켰고 개막전 선발 로테이션에 집어 넣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해에 다승, 방어율, 탈삼진 3관왕을 달성하며 전무후무하게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수상한다.
만 19세의 나이에 18승 6패 방어율 2.23 탈삼진 204 이닝 201.2 를 달성하며 2003년 정민태 이후 우리 나라 프로야구는 압도적인 에이스를 얻게 되었다.
(참고로 정민태 코치는 류현진의 인천 동산고 18년 선배이고 그러고 보면 같은 동향이지만 인천 동산고는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을 A급 ~ S급으로 주름 잡았던 투수들이 즐비한 점이 부럽다. 정민태 – 위재영 – 송은범 – 류현진 등)

07년에도 2년차 징크스를 가뿐히 넘어서며 17승 7패 방어율 2.94 탈삼진 178 이닝 211로 당시 약물 복용이 의심되었던 두산의 리오스를 제외하면 역시 KBO 최고급 투수로서의 위용을 뽐내었다.
 
 

첫 두해 동안에 류현진이 투수로서 해낸 성적은 가히 엄청난 특 SSS 급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문제는 이 두 해가 만 19세와 20세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LA 다저스가 훌리오 유리아스라는 투수의 이닝수와 투구수를 철저히 관리하는 것을 보면 왜 류현진 선수가 가슴 아픈 어깨 수술을 해야만 했는지 이해가 간다.
 
그렇다고 당시 기준에서 이러한 개념이 완전히 장착되지 않았기에 한화 코칭스태프에게 뭐라 할 일도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어찌되었던 류현진은 그 후 다소 널뛰기 성적을 내며 (그래봤자 부진한 것이 여전히 1선발급에 근접하는 성적이었음)
 
 
08년 이후 류현진이 특SS급과 A급의 성적을 내는 동안 문제는 한화이글스가 암흑기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제대로된 용병이 거의 없었고 김태균과 이범호가 일본으로 넘어가면서 본격적인 한화의 암흑기가 도래했고 류현진은 그야말로 소년가장의 아이콘이 되었다,.
특히 당시 한화의 수비 실력은 매우 안타깝다 못해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붉게 자아내곤 하였는데 이것을 뚫고 2010년도 192이닝 16승 4패 방어율 1.82를 기록한 류현진이 정말 대박인 것은 누구나 쉬이 알 수 있게 된다.

한편, 아래 일화가 사실이라면 류현진은 투수로서 왜 그가 닥터 K 로 살아왔는지가 명확해진다. (탈삼진왕 5회)
어느날 유소년들에게 봉사활동을 하던 류현진에게 아이들이 물었다.
“투수는 야수를 믿고 던져야 하나요?”
류현진은 이에 자신을 믿고 타자를 잡겠다는 공격적인 피칭이 더욱 중요하다는 말을 해주었다.
하지만 이는 당시 한화 이글스의 수비력과 묘한 대조를 이뤄 듣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고 한다.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제 1선발이지만 류현진이 대표팀에서 진정한 에이스로 활약했던 것은 역시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아니었나 싶다.
김광현, 윤석민과 빅 3를 이루던 시절 이 빅 3가 합심하여 국민타자 이승엽의 엄호 속에 잊지 못할 금메달을 따낸 기억이 가득하다.

특히 류현진이 이날 쿠바의 강타선을 상대로 8회까지 2실점으로 틀어막는 것을 보면서 어쩌면 류현진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 그것은 현실로 다가와 있다.
 
개인적으로 류현진 선수의 KBO선발 등판 경기는 딱 한차례 봤었다.
때는 2012년이었고 여름쯤의 어느 주말이었지 싶다.
경기장은 인천 문학구장이었고 한화는 선발 류현진, SK는 마리오라는 투수였다.
당시 한화 이글스와 경기하면 왠만한 수준급 투수는 에이스로 격상되는 편이었는데 이 날 역시 마리오는 에이스가 되어 있었다.
마리오는 7회인가 8회까지인가 무실점으로 한화 타선을 막았으며 류현진 역시 8회인가 9회까지 무실점으로 한화 타선을 막았다.
그리고 9회인가 10회인가 바티스타가 마무리로 나와서 정근우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으며 게임을 마무리하였었다.
 
여기서 필자가 인상이 깊었던 것은 류현진이 위기에서 탈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메이저리그에서도 통용되었던 방식이다.
 
일단 류현진은 다소 설렁 설렁 던지면서 소위 타자를 가지고 놀았다. 그러다가 8회에 1사 만루의 위기가 왔다.
잠시 마운드를 재정비한 류현진은 그 때부터 아껴두었던 스피드를 1~2마일 정도 추가하고 소위 공 끝이 다른 구위를 끌어올리는 작업을 병행하는 한편 변화구를 더욱 날카롭게 구사하며 2연속 탈삼진으로 위기를 빠져나왔다.
(안치용 해설위원이 삼진을 당하던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남는다)
당시 문학 구장은 3루측 한화 이글스 팬들의 자부심 가득한 류현진 구호로 가득 찼으며 개인적으로도 매우 흐뭇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다행히 유튜브에 그날의 명품 투구가 있어서 올림)
 
이미 증명이 된 사실이지만 이러한 류현진이 약 2573만불의 포스팅 비용과 3600만불의 6년 계약을 따낸 것은 매우 합리적인 계약이었다.
류현진은 자신의 힘으로 MLB의 최고 명문 중 하나이자 최고 인기팀 중의 하나인 LA 다저스의 3선발로 자리잡으며 초기 2년동안 28승을 거두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하며 한국인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류현진 경기가 예정되면 회사 곳곳에서 마니아들이 몰래 몰래 류현진 게임을 보며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으며 이는 실제로 박찬호 이후처음으로 전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경우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류현진은 14년을 끝으로 15년에 투수로서는 매우 위험한 어깨 수술을 받게 된다.
약 1년여의 재활 끝에 16년 여름에 한 경기에 출전했지만 역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도리어 간단한 팔꿈치 수술을 받으며 이렇게 15년과 16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매우 어려운 재활 과정을 거쳐 당당히 LA다저스의 개막전 선발 로테이션을 꿰찼으며 경기를 치를수록 점점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혹자들은 구속이 안 나오는 것을 뭐라고 하지만 류현진 선수는 현재 2년간의 공백이 있었으며 여전히 실전을 통해 계속해서 감이 늘어나는 단계로 봐야 한다고 생각된다.
 
어찌되었던 지난 2년간 지친 어깨를 푹 쉬면서 여러가지 근력들이 다시 붙을려면 1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고 이 사이 최근의 흐름처럼 류현진은 구속이 전부인 투수가 아니란 걸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롱런의 가능성까지 보이는 상황이다.
나의 열정은 스피드건에 찍히지 않는다는 톰 글래빈도 85~88마일 속구로 MLB 300승을 찍었다.
문제는 제구력과 게임 운용 능력 등이며 구위의 경우 스피드도 물론 요소 중의 하나이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완급 조절로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류현진의 2경기를 보면 이런 흐름을 엿볼 수 있다.
4가지에서 5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왼손 톰 글래빈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추후 구속이 1~2 마일 정도 돌아오더라도 지금 구사했던 이 다양한 레파토리의 향연을 류현진은 잊지 않고 기억하길 기원한다.

 
 
필자 개인의 생각을 봤을 때 올해 기준 150 이닝에 3점대 후반 방어율 그리고 두자릿수 승수를 쌓으면 내년의 본격적인 되돌아옴에 대한 교두보가 확실히 마련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내년에는 180 이닝 이상 채우고 2점대 방어율에 도전하고 15승을 넘겨서 연평균 1800만불 * 5년 이상의 계약을 따내길 기원하고 40살까지 롱런하는 투수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응원하는 바이다.
 
대한민국 No.1 류현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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